미노아 문명의 종말
미노아 문명이 절정을 이룬 것은 기원전 1600년 경이다. 그리고 미노아의 궁전들이 파괴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이다. 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에게 해 여러 섬의 다른 주요 도시들도 불에 파괴되었다. 과거에는 지진이 많이 일어났다. 미노아 문명의 종말도 지진 때문일 수 있다. 최근 학자들은 그 무렵에 그리스의 티라 섬에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했다. 티라 섬은 크레타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아마 크레타에도 해일과 지진이 밀려오고 뒤이어 화산재가 떨어져 들판이 어떤 학자는 크레타인이 궁에 살고 있는 통치자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학자는 새로운 침략의 증거를 발견하기도 했다. 바다에서 이민족이 쳐들어와 물건을 빼앗고 포로들을 데리고 갔으며 이렇게 큰 손실을 입고 나서 그대로 방치되었기 때문에 크레타의 정치권력이 붕괴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노아 문명이 어떤 이유로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는지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상상을 해볼 도리밖에 없다. 부족하기는 하지만 일부 고고학적 증거들을 살펴볼 때, 티라 섬에서 일어난 자연재해가 미노아 문명이 멸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초기 크레타 문명이 이렇게 한순간에 막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 100년 정도 크노소스 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간 번영기가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크레타인은 사실상 권리와 힘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한동안 크노소스는 여전히 번영을 누리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뒤 기원전 14세기 초크노 소스 역시 불타고 말았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왕궁이 더 이상 재건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초기 크레타 문명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게 된다.
해상권을 장악한 미노아 문명
미노아 문명의 역사를 상세히 알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노아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다. 가장 분명한 사실은 미노아 문명이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점이다. 1,000년이 훨씬 더 지난 뒤, 그리스인들은 미노아 문명이에게 해에서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런 생각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기고, 보다 설득력 있는 의견을 내놓았다. 확실히 크레타가 5세기의 아테네나 19세기의 대영제국처럼 강력한 해상권을 행사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크레타에 많은 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렵에 배들이 각각의 목적에 맞게 따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청동기시대에 무역용 선박이나 약탈을 위한 선박, 해적을 무찌르기 위한 선박이 따로따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레타에 항상 주둔해 있는 해군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크레타인은 바다가 그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마도 그들은 대체로 북부 해안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항구로 가는 길을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들은 적을 막기 위한 요새도 없이 북쪽 해안 근처에 도시를 이루고 살았다. 그리고 무역 활동과 해적 활동을 번갈아 하며 영토를 지켜 나갔다. 이처럼 크레타인은 다른 민족이 주변 여건을 활용하듯이 그들의 주변 환경인 바다를 활용했다. 그 결과, 물품과 사상의 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에서 문명이 번성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크레타인은 기원전 1550년 이전에 시리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이탈리아 남서부의 시칠리아와 그 너머 지역까지 교역을 확대했다. 크레타의 물품은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 사이의 아드리아해 연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크레타의 물품이 그리스에까지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다. 크레타는 초기 문명들의 물품과 사상이 청동기시대 유럽에까지 도달하는 데에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때로는 기원전 2000년대 이집트에서도 크레타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크레타의 중요한 판매처였다. 이집트 신왕국에서도 크레타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한때 이집트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크노소스 궁에 살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크레타인이 이집트인과 함께 힉소스인과 싸웠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중해 동쪽 소아시아에서는 크레타의 항아리와 금속 세공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것들 외에도 크레타인이 목재, 포도, 기름, 금속 항아리, 아편 등 다양한 물품을 그리스 본토로 수출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크레타인은 이런 물품들 대신 소아시아로부터는 금속을, 이집트로부터는 설화 석고를, 리비아로부터는 타조 알을 수입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미 그곳은 그만큼 복잡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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