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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문명이 꽃피기 시작한 그리스와 암흑이 꽃핀 에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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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입고 있는 아테네 동상
아테네 동상

 

미케네 문명이 꽃핀 그리스

고대 그리스 유적에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
광장

미케네 문명은 후세에 찬란한 유적을 남겨놓았다. 미케네 문명은 금을 풍부하게 사용했으며, 미노아 문명의 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케네에서 꽃핀 문명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 문화와 원래의 토착 문화가 융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제도는 가장인 남성이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는 가부장제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인도-유럽계 민족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미케네 문명은 그 정도가 좀 더 강했다. 크노소스의 점토판과 기원전 1200년경 펠로폰네소스 서부 필로스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점토판에서 국가적으로 강한 권위를 세우려는 그들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아카이아인에게 정복당한 크레타로부터 본토 쪽으로 거꾸로 변화의 역류가 밀려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규모가 큰 도시에는 저마다 왕이 있었다. 미케네에서는 전사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이나 노예였다. 미케네를 통치하는 왕은 일찍부터 그리스의 여러 왕들 중 우두머리였던 것 같다. 또한 히타이트의 외교 기록은 그리스가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연합해 있었다. 는 증거를 보여 준다. 필로스 지역의 진흙판에 따르면, 왕의 지배 아래 사회가 철저히 관리·통제되었다. 관료들의 등급은 서로 차이가 있었고, 노예와 자유인의 구분도 명확했다. 하지만 이런 차이와 구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또 미케네 문화의 뿌리에 있는 경제생활도 대부분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크레타처럼 미케네 문명에서도 왕실에 경제가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 정도다. 물질적 토대를 어디에 두었든 미케네 문명의 문화는 기원전 1400년경에 이르러 그리스 본토 전역과 많은 섬들로 확산되었다. 그리스는 고전시대까지 방언의 차이가 남아 있었지만, 이미 그 당시에 하나의 공통된 지역으로 묶을 수 있게 되었다. 미케네 문명은 미노아 문명을 제치고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다. 그들은 지중해 동부의 레반트 지역에 무역을 위한 중심지들을 세우기도 했다. 히타이트 왕은 미케네를 강대국으로 대접했다. 미케네의 도기는 종종 미노아의 도기를 대신해 수출되었고, 미노아 문명의 정착지였던 곳에 미케네 문명의 정착지가 형성되기도 했다. 미케네 제국은 기원전 15~14세기에 절정기를 맞았다. 이집트가 쇠약해지고 히타이트가 무너져 가면서 한동안 상황은 미케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또 무역으로 부유해진 미케네인은 강대국들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잠시 동안 그들에게 걸맞지 않은 위상을 누렸다. 미케네의 식민지들은 지중해 동부 소아시아의 해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다른 아시아 도시들, 특히 트로이와의 무역이 크게 번성했다. 하지만 기원전 13세기 말부터 쇠퇴의 징조가 나타났다. 아마도 전쟁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아이 아인은 기원전 13세기 말 이집트를 공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공격은 기원전 1200년경에 일어났던 것 같다. 미케네 문명의 도시들에서 왕조의 교체가 계속해서 일어난 데에는 이런 혼란스러운 사건들의 배경이 있었다.

바다의신 포세이돈의 그림
바다의신 포세이돈

에게 해의 암흑시대

어느덧 에게 해에 암흑시대가 다가왔다. 같은 시기 서아시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에게해의 암흑시대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트로이가 함락되었을 때, 그리스 본토는 이미 새로운 세력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뒤였다. 그리고 기원전 13세기 말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가 파괴되었다. 어쩌면 지진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초의 그리스는 각각의 도시가 산산조각 났다. 이로써 하나의 통일된 공동체를 이루었던 미케네 문명은 붕괴되었다. 하지만 미케네 문명의 모든 중심지들이 황폐화된 것은 아니었다. 파괴되지 않은 나머지 몇몇 도시들은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계속 유지되었다. 왕가의 보물들은 사라지고, 무너진 왕궁들은 재건되지 않았다. 반면 어떤 곳에서는 수세기 동안 원래의 주민들이 편안하게 살아갔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원래의 주민들이 새로운 정복자들의 노예가 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났다. 이 정복자들은 북쪽에서 온 인도-유럽계 민족으로 트로이가 함락되기 100여 년 전부터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스를 침략한 이 새로운 세력은 언제나 약탈한 지역에서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기존의 정치적 구조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이제 그리스의 미래는 미케네의 제도가 아니라 새로운 세력이 들여온 혈연관계가 바탕을 이루는 사회가 된다. 에게 해의 암흑시대가 깊어지면서 이곳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다가 기원전 1000년이 되기 직전, 이곳에 새로운 조짐이 나타났다. 그리스의 고전시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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