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사

에게 헤 주변의 인구 변화

728x90

에게 해 지역
에게 해

에게 해 주변의 인구변화 및 도리스인과 아오니아인, 호메르스의 그리스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서를 모두 읽어주신 분들은 에게 해 주변의 인구변화 및 도리스인과 아오니아인, 호메르스의 그리스를 알게 되실 겁니다. 에게 해 주변의 인구변화 및 도리스인과 아오니아인, 호메르스의 그리스의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전체 다 읽어주세요. 이제 아래에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도리스인과 아오니아인

혼란스러웠던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세력 중 도리스인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들은 활기차고 대담한 성격으로 훗날 헤라클레스의 후손으로 불리게 된다. 초기 침략자들의 전통을 살펴보면 그들이 도리스 방언을 쓰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리스 방언은 도리스인과 다른 그리스인은 구분해 주는 특징으로 고전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스 남동부의 스파르타와 북동부의 아르고스에서는 훗날 도시국가로 발전할 도리스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다른 그리스인들도 이 혼란스러운 시기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키는 데 한몫했다. 그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이오니아 방언을 구사하는 그리스인들이었다. 암흑시대의 이오니아인들은 그리스 중부 아티카에서 나와 남부의 키클라데스 제도와 이오니아에 근거를 마련했다. 이오니아는 오늘날 터키의 에게 해에 접한 지역을 말한다. 참고로 이 당시 아테네는 혼란의 시기를 무사히 넘겼거나 아니면 침략자들을 성공적으로 동화시켰다. 도리스인과 이오니아인은 이주민인 동시에 해적으로 도시들을 빼앗거나 새롭게 건설했다. 섬은 아니었지만 도시들은 거의 해안이나 해안 근처에 위치해서 이후 해상 활동에 유리한 도시국가가 되었다. 그들이 택한 지역은 대개 미케네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들은 이따금 지중해 연안의 스미르나 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원래의 그리스 정착민들을 내쫓아 버렸다. 사실 지중해 지역은 그 당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아주 부분적인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혼돈으로부터 서서히 통일된 문명이 다시 등장해 청동기시대의 에게 해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처음에는 서로 갈라지고 배척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한때 이곳에는 개개인이 세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세계주의* 가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시대의 지역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이어서 교역이 쇠퇴하고 아시아와의 교류도 시들해졌다. 이를 대신한 것은 사람들의 이동이었다. 어떤 때는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는 데 수백 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마침내 미래 그리스 세계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게 해 지역 주변으의 인구 감소

 

드디어 에게 해 문명지에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 고대의 문명은 참으로 불완전했다. 기원전 1100~1000년에는 많은 지역에서 인구가 극심하게 줄어들었다. 많은 학자들이 갑작스러운 자연 재해를 원인으로 제시한다. 전염병이 일어났거나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농경지가 갑자기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원인이야 어떻든 그 결과 예술과 기술이 쇠퇴했다. 보석이나 장신구, 프레스코화, 세련된 도기들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노래나 신화, 종교 사상 같은 정신세계에서만 그 문화가 이어져 왔다.

 

호메로스의 그리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일어났던 일들은 당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시를 읊었던 음유시인들의 서사시 속에 희미하게나마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런 서사시는 나중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두 작품에는 수많은 세대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이야기들이 녹아 들어갔다. 서사시 낭송의 전통은 사실 음유시인들이 입으로 역사적인 사건들을 전해 주던 시대와 거의 함께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그 영광은 모두 호메로스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들이 이야기 속에 반영되었는지는 논란이 많았다. 최근에는 미케네시대나 그 얼마 후에 일어났던 일이 이야기에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의견을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일리아스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 아닌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그 이야기가 아카이아인이 소아시아로 전력을 다해 진출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리아스에 남아 있는 것은 그 당시에 대한 추상적인 정보일 뿐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를 통해 미케네 왕의 출중함을 특별히 강조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실 기원전 8세기 미케네 문명 이후의에게 해에 관한 것이다. 이때는 에게 해가 암흑시대에서 회복되기 시작한 때다. 작품 속의 사회에서는 왕이 아니라 포악한 장군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왕들은 가장 고귀한 귀족이며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모두 왕이 아닌 잔인하고 공격적인 전사들에게 있었고, 왕은 전사들의 견제를 받았다. 또한 그들은 각각의 능력에 따른 평가를 받았다. 왕들의 삶은 불안정하고 가혹했다. 그들은 개인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이었다. 어쩌면 미케네의 진흙판에서 칭송하는 이상적인 통치자가 아니라 바이킹의 우두머리와도 같았다. 이 서사시가 이전 시대나 후대 사회를 얼마나 반영하는 이는 원시 사회의 일면을 비춰 주고 있을 뿐이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이 원시 사회는 여전히 혼란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 그것은 미케네 문명만큼 발달한 사회도 아니었고, 미래의 그리스에 대한 어떠한 조짐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오랜 기간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문명이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문명은 동양과 다시금 교류를 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헬레네스 가 섬들로 나아가 이어 아시아 본토로까지 이주해 간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들이 차지한 지역은 두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고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문명의 씨앗은 언제나 세계사의 중개자, 즉 위대한 무역 민족에 의해 뿌려지는 법이다.

 

이런 게시물도 같이 읽어보시는 거 어때요?

2022.03.27 - [세계사] - 문명이 꽃피기 시작한 그리스와 암흑이 꽃핀 에게 해

 

문명이 꽃피기 시작한 그리스와 암흑이 꽃핀 에게 해

미케네 문명이 꽃핀 그리스 및 에게 해의 암흑시대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내용을 끝까지 읽어주시면 미케네 문명이 꽃핀 그리스 및 에게 해의 암흑시대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미케네

wisedongdong19.tistory.com

2022.03.26 - [세계사] - 미노아 문명의 정치, 생활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노아 문명의 정치, 생활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노아 문명의 문화적 배경 및 미노아 문명의 생활상, 정치상을 공유하겠습니다. 이 문서를 끝까지 읽으면 미노아 문명의 문화적 배경 및 미노아 문명의 생활상, 정치상을 알아두시는 것에 활용

wisedongdong19.tistory.com

 

에게 해 주변의 인구변화 및 도리스인과 아오니아인, 호메르스의 그리스를 공유해드렸습니다. 전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적으로 필요하신 정보가 있다면 위의 글들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포스트가 유익했다면 구독, 하트(공감), 댓글을 해주시면 블로그 유지보수에 원천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