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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운송의 발달로 인한 무역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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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과 물품의 비축

고대 유물 가운데에는 기원전 2000년대 서아시아에서 무역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가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 실질적인 시장경제가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화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에 들어서이다. 그 전에는 금속 덩어리나 물건의 교환을 통해 교역이 이루어졌다. 물물교환과 외교적 선물 또는 공물은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서기관과 성직자들의 관리 아래 곡물을 쌓아 두었다. 그 덕분에 이집트인들은 흉작 때도 잘 견뎌 낼 수 있었다. 성서의 요셉 이야기에 이런 일들이 잘 묘사되어있다.

무역을 위해 이동하는 사람
교역

화폐의 발명

오늘날에도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은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대의 교역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대부분 물물교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폐가 발명되면서 커다란 도약이 이루어졌다. 화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발명된 듯하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2000년 이전에 이미 곡식이나 은으로 물건의 가치를 계산하고 있었다. 청동기시대 말에는 지중해 전역에서 구리 덩어리가 화폐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화폐로 인정받은 최초의 교환 수단은 기원전 3000년대 말 지중해 동쪽의 아나톨리아 중동부 지역인 카파도키아에서 사용한 은 덩어리였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금속 화폐였다. 그러나 비록 화폐가 중요한 발명이었고 이후 널리 전파되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금속 덩어리에 불과했다. 일정한 동전 모양으로 만든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7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화폐제도는 무역을 더욱 활발하게 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일찍부터 신용제도 등의 복잡한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시 꼭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화폐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었다. 무역에 뛰어났던 전설적인 민족 페니키아 인은 뛰어난 상술과 지혜를 자랑했지만, 기원전 6세기 전까지 화폐가 없었다. 중앙통제 경제를 유지하며 거대한 부를 누렸던 이집트는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주화를 도입하지 않았다. 켈트족이 지배하던 유럽은 주로 금속으로 교역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형태의 주화를 만든 것은 그로부터 200년 이상 지난 뒤의 일이었다.

화폐 없이 이루어진 무역

당시에는 화폐 없이 물물교환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짐작하기가 힘들다. 거래하는 물품의 양은 크게 늘었지만, 기원전 1000년경까지는 오늘날과 같은 '무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고대의 경제체제라는 것은 오랫동안 그다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다. 예컨대 도기 제조업처럼 어떤 특별한 업종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을 뒷받침하는 단체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단체는 생산된 물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한편으로는 그런 물품을 생산하는 전문 직업인들을 먹여 살렸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에 필요한 식량이나 다른 물품들을 서로 다시 나눠 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비록 물물교환의 형태라 할지라도 그것은 무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시대 수많은 민족들이 족장이나 왕 등의 우두머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눠 주었다. 그들은 공동의 물품을 관할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공동체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런 물건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메르의 신전에서 이루어지던 중앙집권적 통제 경제의 배후에는 이런 현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신전에 바치는 물건을 기록하고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파리서 고대에는 기록과 회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체 간의 경제적 교환이 초기 단계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한마디로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역사적 기록이 가능해진 시대에 들어서면, 많은 활동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교류가 금전적 이익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지만, 물건을 옮기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일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물건들은 대부분 지도자 간의 선물이나 제물이었다. 기원후 19세기까지 중국은 외국과의 교역을 다른 나라에서 공물을 바치면 그들에게 하사품을 내리는 행사쯤으로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를 보면, 파라오 역시 에게 해 민족들과의 교역을 비슷한 식으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세계에서는 일정한 무게의 용기나 삼각대 혹은 동일한 크기의 반지처럼 일정한 기준이 될 물품들을 거래에 이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런 물품들이 당시에는 어느 정도 화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어떤 때에는 실제로 유익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그저 상징적인 행위에 불과하기도 했다. 분명한 점은 상품의 이동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익을 위한 거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롭게 생겨나는 도시들은 교역이 더욱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촉매가 되었다. 이러한 도시들은 부분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서아시아 전역에서 생겨났다. 도시는 농업으로 생겨난 부를 충분히 활용했을 뿐 아니라 농촌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을 바탕으로 성장해 갔다. 도시로부터 농민들이 소외당하는 상황은 이미 성서의 구약에서부터 등장한다. 하지만 도시는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데에 새로운 힘을 더해 주었다. 도시에 의해 문명의 발달이 더욱 가속화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