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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업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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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교역

금속을 다루려면 야금술이 필요했고, 이러한 기술은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다. 금속을 얻기 위해 먼 지역 간에 복잡한 장거리 무역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장거리 교역으로 다양한 물건을 교류하면서 고대 세계에는 통일된 특성이 생겨났다. 이런 통일성은 기원전 2000년대 말이 되어서야 붕괴되었다. 예컨대 주석은 메소포타미아와 아프가니스탄, 아나톨리아에서 가져와야 했다. 키프로스의 구리 역시 많이 거래되었다. 유럽은 고대 역사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지만, 구리를 찾는 과정에서만큼은 중요한 지역으로 새롭게 떠올랐다. 발칸 반도에 있는 땅속으로 뚫은 어떤 길을 보면, 기원전 4000년 이전에 구리를 캐기 위해 지상으로부터 20여 미터를 파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후 일부 유럽 민족이 높은 수준의 야금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특히 청동을 두들겨 넓게 펴거나 철기를 특정한 형태로 만드는 데 뛰어났다. 고온으로 철을 녹여 물건을 만들 수 있기 전까지 철은 청동보다 훨씬 더 작업하기 어려운 금속이었다.

새로운 운송 수단의 발달

새로운 운송수단이 된 당나귀
당나귀

장거리 교역이 성장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는 운송 문제에 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물건을 나르는 데 당나귀를 이용했다. 그리고 기원전 1500년 무렵 낙타를 가축으로 기르게 되자, 아시아와 페르시아 만에서는 먼 곳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대상 무역이 가능해졌다. 낙타 덕분에 그전까지는 거의 접근할 수 없다고 여겼던 사막도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유목민의 경우를 제외하면, 바퀴가 달린 운송수단은 그다지 중요하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는 바퀴 달린 운송수단이 지나다. 닐만큼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레는 주로 소나 당나귀가 끌었다. 소나 당나귀는 기원전 30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2250년경에는 시리아에서, 그로부터 200~300년 뒤에는 아나톨리아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는 그리스 본토에서 수레를 끄는 데 이용되기 시작했다.

해상 운송의 발달

기원전 2000년대에도 운송할 물건이 많을 때는 배로 나르는 것이 값싸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증기기관차가 생기기 전까지 마찬가지였다. 상인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아라비아 남부 해안의 고무와 송진을 전해 주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배를 통해 이런 물품들을 홍해까지 실어 나르고 있었다. 또 상인들은 무역선을 타고 에게 해를 돌아다녔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통나무배를 타고 먼 거리까지 항해했다. 심지어 기원전 7000년대에 항해를 했다는 증거까지 남아 있다. 기원전 2000년대에 들어서 해상 운송 기술은 더욱 새롭게 발전하면서 운송 분야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기원전 2600년 무렵, 제3왕조의 이집트인들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돛을 달기도 했다. 중앙 돛대와 가로로 된 돛을 사용하면서 사람의 힘이 아닌 다른 동력으로 움직이는 선박 항해가 시작되었다. 그 후 2,000년 동안 선박 장비들은 천천히 발전해 갔다. 이 무렵 세로로 된 돛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배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항해할 때는 세로로 된 돛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대의 선박 대부분은 가로로 된 돛이 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해상 이동 및 수송 환경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결정적이었다. 배를 움직이는 또 다른 주요 동력은 바로 인력이었다. 일찍부터 발명된 노는 먼바다를 항해하고 배를 원하는 방향으로 운행하는데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노는 전함에 더 많이 사용되었고, 돛은 일찍부터 상업적인 용도의 배에 보다 많이 사용되었다. 기원전 1300년대에는 구리 덩어리 200개 이상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배가 지중해 동부를 항해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세기 뒤에는 물이 새지 않는 갑판을 갖춘 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