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군주제
이집트의 위대한 업적은 무엇보다 국가의 주권을 한 사람이 가지고 다스리는 군주제 국가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군주제라는 국가 형태 자체가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것 일할 수 있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하류의 멤피스에서 최초로 꽃을 피웠다. 멤피스는 메네스 왕이 살아 있을 때부터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구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 뒤 신왕국에서는 대체로 멤피스보다 남쪽에 위치한 테베가 수도였으며, 수도가 불명확한 시기도 있었다. 멤피스와 테베는 종교의 중심지이자 거대한 왕궁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멤피스와 테베는 이 단계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도시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전부터 제대로 된 도시가 없었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왕들은 사회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도시국가의 중요 인물이었지만, 이집트의 왕은 그렇지 않았다. 이집트의 왕은 결코 다른 왕조의 왕처럼 신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리는 신의 하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집트에는 사원과 왕궁, 즉 종교적인 힘과 정치적인 힘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없었다. 이집트의 왕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는 신 그 자체였다. 그는 신의 하인이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이집트의 왕 파라오

‘큰 집’이라는 뜻의 파라오라는 칭호를 왕에게 직접 사용한 것은 신왕국시대뿐이다. 그전에 파라오는 왕이 머무는 거처와 궁정을 의미했다. 이미 신왕국시대 훨씬 이전부터 이집트의 군주들은 고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한 권위를 갖고 있었다. 이는 아주 오래된 이집트의 유물·유적에서 파라오가 얼마나 크게 그려졌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파라오의 권위는 선사시대의 왕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이집트에서는 농사가 잘되어 번성하게 되자, 선사시 대부 터와을 신적인 존재처럼 섬기게 되었다. 왕에 대한 그러한 경외심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이어져 내려왔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나일 강이 최대 관심사였다. 사람들은 파라오가 나일 강의 높이를 조절한다고 여겼다. 강물의 높이를 마음대로 조절한다는 것은 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이집트 왕실이 거행한 최초의 의식은 풍요를 빌거나 경작지에 물을 대는 일, 땅을 일구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메네스 왕의 모습은 그가 선박 운행과 농사에 필요한 수로인 운하를 파고 있는 모습이다. 구왕국에서는 왕이 모든 땅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여겨졌다. 곧이어 왕은 땅의 원래 주인인 신의 자손으로 경배받기 시작했고, 매 모양의 이집트 태양신 호루스로 올라섰다. 이 신은 이집트 최고의 신 오시리스의 아들이었다. 이집트 왕은 만물의 질서를 창조하는 신과 같이 강력한 능력을 갖춘 존재로 받들어졌다. 그림에서 그의 적들은 사냥에서 잡힌 새들처럼 줄줄이 묶여 있거나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의 뇌를 뽑아내는 그림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정의는 '파라오가 사랑하는 것'이었고, 악은 파라오가 증오하는 것이었다. 파라오는 전지전능했고, 따라서 따로 기준으로 삼을 만한 법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신왕국의 파라오는 그 당시 다른 문화에도 등장하는 위대한 전사처럼 묘사되었다. 이 시대의 그림에서는 전차를 탄 영웅적인 파라오가 적들을 짓밟고 맹수들을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서 신으로 여겨지던 왕이 점차 현실세계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집트의 왕이 완전히 신의 영역 바깥으로 나왔다고 할 수는 없었다. 기원전 1500년경 파라오의 한 고위 관리는 이렇게 썼다. "그는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신이시며, 만인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시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다. “ 중왕국 시대까지는 오로지 파라오에게만 사후의 삶이 있었다. 이집트는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왕이라는 점을 다른 청동기시대 국가들보다 훨씬 더 강조했다. 이런 생각은 철기시대가 시작되었을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뒤 이집트가 다른 민족의 손아귀에 떨어지면서 파라오를 모든 세계의 신으로 믿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관료제
신왕 국시 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이집트는 정교하고 위계 있는 관료제를 갖추고 있었다. 관료제의 가장 높은 자리에는 대신, 지방 총독, 고관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귀족 출신이었다. 이들 중 이름을 날린 몇몇 귀족은 파라오의 무덤만큼이나 웅장한 묘에 묻혔다. 지위가 낮은 가문에서는 수천 명의 서기관들이 배출되었다. 서기관들은 고위 관리들이 관장하는 복잡한 통치체제 아래서 일했다. 당시 문헌을 살펴보면 서기관으로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덕목들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고대 이집트의 관료제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 덕목에는 공부에 전념하기, 자기 수양, 신중함, 윗사람에 대한 존경, 각자의 위치나 한계에 대한 인정 그리고 토지 재산과 법적 형식의 신성함에 대한 존중 등이 있다. 서기관들은 테베에 있는 특별한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여기서는 전통 역사와 문학, 다양한 문자 사용 방법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회계업무도 가르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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