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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이집트의 분열과 통일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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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함족의 자취

이집트 문명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석기시대 이집트의 남쪽, 나일 강 상류에는 함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기원전 5000년경부터 나일 강 유역에서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을 거둬들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땅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장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했다. 그리고 저마다 특정한 동물을 신성한 존재로 섬기는 씨족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도기에 신성시하는 동물들을 그려 넣고는 했다. 씨족장은 씨족의 구성원들이 사는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훗날 이집트 지배 집단을 이루는 뿌리가 되었다. 초기 이집트는 고대 서아시아의 다른 지역만큼 농업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집트인들은 일찍부터 몇 가지 중요한 기술적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들은 종이의 재료로 쓰였던 식물인 파피루스로 배를 만들었다. 또 현무암 같은 단단한 재료를 다룰 줄 알았고, 구리를 이용해 일상에서 쓰는 작은 물건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말하자면 문자 기록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이집트는 꽤 발전해있었던 것이다. 정교한 보석 등을 만드는 전문 기술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만든 보석을 보면, 이미 이집트 사회에 신분상의 구분이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기원전 3500년 무렵, 이집트 북쪽 삼각주 지대에서 특별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본격적으로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그 영향은 이 시대 예술에 잘 드러나 있다. 이때부터 식량생산 방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사냥과 낮은 수준의 곡물 재배가 사라지고 농업이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예술에서는 훗날 이집트의 예술적 전통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얕은 돋을새김이 등장했다. 또한 구리가 더욱 풍부해졌다. 모든 것이 거의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고 있었다. 기본적인 정치 구조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이집트에 흐르는 나일강의 모습
나일강의 일몰

이집트에는 기원전 4000~3000년 사이 두 개의 왕국이 세워졌다. 하나는 나일 강 하류의 하이집트(북부 이집트)였고, 다른 하나는나일강 상류의 상이집트(남부 이집트)였다. 흥미롭게도 이곳에서는 수메르와는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하나의 도시가 곧 국가의 형태를 갖는 도시국가가 없었던 것이다. 이집트는 문명 이전 단계에서 방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국가로 곧장 발전한 듯하다. 이집트에서는 농민들이 모이는 시장에서 초기 형태의 도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와 씨족들이 합쳐지면서 각 지방이 형성되었고, 메소포타미아보다 700년 일찍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도시 생활은 보잘것없는 규모에 불과했다. 문자 기록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3200년경이었다. 이전까지는 남쪽과 북쪽 두 이집트의 왕들에 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그들은 수세기 동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점점 더 큰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글을 사용했기 때문에, 수메르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문명의 발전 단계를 알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처음부터 행정적·경제적 편의를 위해 글을 썼을 뿐 아니라 후대에 전할 역사적 기념물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도 글을 썼다.

이집트의 통일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200년경 남쪽 지역인 상이집트의 위대한 왕 메네스가 북쪽 지역을 점령했다. 그리하여 이집트는 나일 강 상류의 아부심벨까지 길이가 1,000km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되었다. 이후 이집트의 영토는 더욱 커졌다. 이따금 분열을 겪기도 했지만 이집트 문명은 사실상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고대 이집트 왕조는 약 3,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존재했다. 그야말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장대한 역사다. 이 오랜 세월 동안 이집트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겠지만 우리는 결코 그 전부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문명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이어 온 안정성과 지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