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왕국 시대
이집트 문명이 그토록 탄탄하게 유지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는 것은 대단히 깊은 인상을 준다. 특히 그들의 문명은 오랜 기간 거의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바깥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파악하기는 메소포타미아의 경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이집트의 역사는 시간적 범위가 무척 길다. 구왕 국시 대만 따져도 미국 역사에 비해 훨씬 길다. 역사가 긴 만큼 구왕국에서도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 일들이 얼마만큼 중요했는지를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이집트의 역사는 상이집트의 메네스 왕 이후 거의 1,000년 정도를 따로 떼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때는 파라오의 권력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고, 나라도 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구왕국 아래에서는 서서히 지방 분권화가 일어나 지방 관리들의 영향력과 자립도가 커지고 있었다. 파라오는 여전히 두 개의 왕관을 써야 했고, 죽으면 땅에도 두 번 묻혔다. 한 번은 상이집트에서, 한 번은 하이집트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메네스 왕이 상·하이집트를 통일했지만, 이 두 나라는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웃 지역과의 관계에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없었다. 구왕국시대 말에 팔레스타인 민족을 공격한 일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 뒤 제1중 간기에는 반대로 이집트가 침략을 받았다. 이집트의 국력 쇠퇴와 내분 덕분에 침략자들은 비교적 쉽게 나일 강 하류에 세력을 확립했다. 나일 강 유역에는 이때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고귀한 자들은 한없는 비탄에 싸였다. 반면 가난한 자들은 희희낙락했다. 땅이 더럽혀졌다. 낯선 자들이 이집트에 들어왔다.’ 그 후 오늘날의 카이로 근처에 새로운 왕조들이 나타나 경쟁을 벌였고, 이집트 문명의 중심지였던 멤피스는 그 힘이 약해졌다.
중왕국 시대
이집트 역사의 다음 단계는 중왕 국시 대다. 왕의 대신이었던 아메넴헤트는 왕위를 빼앗은 뒤 테베에서 왕국을 새롭게 통합했다. 그는 중왕국 번영의 기초를 마련했고, 기원전 2,000년 이후 약 250여 년 동안 이집트는 이전의 번영을 다시 누리게 되었다. 중왕 국시대 전반기를 이처럼 새롭게 번영을 이룬 시기로 평가하는 것은 이집트인들이 제1중 간기 때 너무도 두려움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 당시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중왕 국시대에는 사회적인 질서와 유대가 새롭게 강조되었다. 파라오의 지위도 조금 달라져서 그는 이제 단순한 신이 아니었다. 그는 신의 후손이자 신들을 이끄는 존재로 강조되었다. 혼란스러웠던 제1중 간기를 거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라오에 대한 의심이 점차 생겨났지만, 그 뒤에도 파라오의 강력한 질서체계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다. 그런 가운데 이집트는 영토를 확장해 나가 면서 더욱 성장했다. 나일강의 습지대에서는 땅을 일구는 개간 사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또 나일 강의 제1폭포와 제3폭포 사이에 있는 남쪽의 누비아를 점령하고 그곳의 금광을 개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인들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 쿠시'라는 신비로운 왕국에 정착해 살기도 했다. 무역은 그 전 어느 때보다 활발히 일어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시나이 지역의 구리 광산도 다시 개발되었다. 종교적인 변화도 뒤따랐다. 고대 이집트 최고의 신으로 꼽히는 '아몬-레에 대한 숭배가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는데, 이는 아몬 레 혹은 그 아들로 여기던 파라오의 힘이 강력해졌음을 뜻한다. 하지만 중왕 국시 대도 결국 급격한 정치적 변화와 왕조 간의 경쟁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중왕 국시대 이후 약 200년간 지속된 제2중 간기에는 이전보다 훨씬 위협적인 세력이 침략했다. 그들은 셈족 계통으로 추정되는 힉소스인으로, 철기로 무장한 전차를 타고 이집트에 쳐들어 왔다. 그들은 나일강 삼각주 지대에서 세력을 확립했고, 테베에 있던 이집트 왕조는 그들에게 공물을 바쳤다. 힉소스인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은 이집트의 전통과 생활방식을 받아들였고, 처음에는 이집트인들의 관료제까지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과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했다. 결국 제18왕조 때 이집트인들은 전쟁을 일으켜 힉소스인들을 쫓아냈다. 이때부터 신왕 국시 대가 시작되었다. 신왕국은 희 소스인의 중심지인 요르단 서쪽 가나안 남부 지역까지 쳐들어가 큰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했다.
신왕국 시대
절정기를 맞은 신왕국은 대외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여러 곳에 기념물들을 남겨 놓았다. 힉소스의 지배는 이집트를 새롭게 일으키는데 힘을 불어넣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전차와 군사 기술의 발달은 큰 밑거름이 되었다. 신왕국시대에 이르러 이집트의 미술은 더욱 발전하였고, 새로운 문물이었던 전차와 같은 아시아의 무기와 군사 기술은 더욱 발달했다. 무엇보다 왕실의 권위가 대단히 강해졌다. 하트셉수트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이집트의 무역을 확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뒤 약 100년 동안 군사적인 성공과 영광의 날들이 이어졌다. 하트셉수트의 계승자인 투트모세 3세는 이집트 제국의 영토를 유프라테스 강까지 넓혔다. 당시 곳곳에 세워진 기념비를 보면, 공물과 노예들이 쉴 새 없이 도착하고 아시아 지역의 왕녀들과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집트 내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신전들과 전성기 이집트 예술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가슴 위까지 만든 흉상, 서 있는 모습의 입상 등의 조각이 곳곳에 세워졌다. 또한 이 무렵에는 이집트 예술에 외국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대부분 지중해의 크레타 섬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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