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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이집트 문자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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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인 상형문자

사물 대신 소리를 나타내는 방식에서 착안하여 만든 이집트 상형문자
상형문자

이집트인들이 이룬 또 다른 위대한 업적은 '문자'였다. 그들은 사물 대신 소리를 나타내는 수메르의 표현 방식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수메르인들이 쓰던 설형문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대신 사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를 개발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쐐기 모양의 동일한 기호를 여러 형태로 배열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반면 이집트인들은 실물과 비슷한 작은 그림을 사용했다. 이것은 설형문자보다 보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배우기가 훨씬 힘들었다. 최초의 상형문자는 기원전 3000년 이전에 이미 등장했고, 최소한 4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거의 4000년이라는 매우 오랜 기간에 사용된 셈이다. 하지만 상형문자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것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상형문자를 발견했을 때는 상형문자가 사라진 지 이미 1,450여 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1799년 프랑스군이 이집트에 주둔하고 있을 때 '로제타석'이라는 비석이 발견되었다. 군대와 함께 이집트에 들어가 있던 학자들은 로제타석을 프랑스로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의 한 학자가 로제타석에 새겨져 있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해 냈다. 사실 이집트에 관해 글을 쓴 고대의 저술가들은 상형문자에 큰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읽는 법을 배우지는 않았다. 상형문자가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보면, 상형문자는 이집트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원전 2000년경 등장한 알파벳의 기원인 셈 문자가 바로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상형문자는 현재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알파벳의 먼 조상이기도 하다.

파파 루스의 탄생

고대 세계에서 상형문자를 읽는 능력은 성직자 계급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였다. 따라서 상형문자는 일부 소수만이 가지고 있는 전문 지식이기도 했다. 상형문자는 왕조시대 이전부터 역사적 기록을 위해 사용되었다. 파피루스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3000년경 제1왕조 시대부터였다. 파피루스는 갈대 조각을 엇갈리게 배열한 뒤 두드려서 한 장으로 만든 인류 최초의 종이였다. 이것은 글을 쓰는 데 매우 편리한 수단이었다. 사실 파피루스야말로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한 고대 이집트의 진정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파피루스는 상형문자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 파피루스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보다 비용이 덜 들었고, 진흙판이나 석판보다 잘 부서지긴 했지만 가지고 다니기에 훨씬 간편했다. 서아시아에서는 기원 후까지도 편지를 쓰거나 기록을 할 때 파피루스를 주로 사용했다.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지중해를 통해 세계로 종이 만드는 방법이 전파된 다음에야 상황이 달라졌다. 종이 paper라는 말도 사실 파피루스 papyrus에서 나온 말이다. 파피루스가 등장하자마자 저술가들은 파피루스를 이어 붙여 긴 두루마리를 만들었다. 이집트인들은 글을 쓸 수 있는 재료와 현재의 알파벳 원형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책까지 만들어 냈던 것이다. 우리가 고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의 상당 부분은 이집트인들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다. 고대 세계에 관한 많은 정보가 그들이 쓴 파피루스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찬란한 문명의 진실

이집트의 종교와 주술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능력과 미술이나 건축에서 웅장하게 드러나는 정치적인 힘은 이집트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명성을 자랑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하지만 사실 문명이 그다지 풍요롭거나 역동적이지는 않았다. 이집트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그들은 일단 창조적인 문명의 단계에 올라서자 더 이상 혁신을 꺼렸다. 그나마 석조 건축 쪽이 문자가 들어온 이후 유일하게 큰 발전을 이룬 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파피루스와 수레바퀴가 기원전 3000년경인 제1왕조 시대부터 사용되긴 했지만, 방아 두레박을 쓰기 시작한 것은 메소포타미아와 2000년 동안 교류를 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방아 두레박을 쓰고 있었다. 나일 강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이집트인들이 일상의 변화를 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집트 예술 작품을 보면, 일꾼들은 팀을 이루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작업 과정이 어렴풋하게나마 오늘날의 공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조직적으로 일을 했음에도 이집트는 중요한 도구나 장치들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늦게 받아들였다. 구왕국시대 이전에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가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금이나 구리, 청동을 다루는 기술은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선반은 기원전 300년 무렵의 헬레니즘 시대에 가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이집트 기술자들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구멍을 뚫거나 재료의 속을 파낼 때 사용하는 활비비'라는 송곳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