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라이인의 민족의 지도자 모세와 그의 인도를 통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헤브라이인 민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글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모세와 히브리인에 광야에서 고통스러운 시간과 그리고 그 끝에 야훼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한 헤브라이인의 민족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헤브라이인의 통치자
성서에 묘사되어 있는 헤브라이인의 전통은 서구 문화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헤브라이인의 고대 국가에 관해 알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기에 성서의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사실인지 아닌지 입증하기에 조금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여호수아가 실존인물인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왕궁의 기록들이 발견되면서 헤브라이인의 국가 관한 정보가 들어 있어 역사적 사실로 밝혀질지 모르는 일이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다윗 이전의 지도자에 대한 기록과 사건의 전말은 아직까진 추측에 따라 구성할 수밖에 없다.
민족을 이끌어 낸 모세
헤브라이인의 종교와 사상에 담긴 참뜻은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밝혀졌고, 그것이 완벽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이들의 사상은 처음에는 전쟁에서 신이 자신들을 지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여기에는 사막에서 살아가던 그들만의 특징이 크게 반영되었다. 이후 유대인의 전설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이야기에는 신비에 둘러싸인 위대한 인물 모세가 등장한다. 헤브라이인은 가나안에 당도했을 때 이미 야훼 숭배로 단결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그들이 시나이 반도에서 40년간 살았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이때가 그들의 민족의식이 단련되는 중요한 시기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가 의지할 곳은 성서밖에 없는데, 성서가 쓰인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 그러나 헤브 라인이 이집트에서 고된 억압을 받다가 도망쳐 나왔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믿을만하다. 성서에는 헤브라이인이 이집트에서 받은 억압과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모세는 이집트식 이름이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탈출을 주도하고 광야에서 헤브라이인의 단합을 유지했던 인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크다. 전해 오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시나이 산에서 야훼로부터 그들이 지켜야 할 열 가지 법이 쓰인 십계명을 받았다. 이는 이전에 야훼와 그 백성이 맺은 약속을 다시 새롭게 한 것이었다. 이 일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오랫동안 나일 강의 삼각주 지역에서 방황하던 헤브라이인들이 그들의 종교적 전통을 다시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이 위대한 종교 개혁가이자 민족적 지도자의 정확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십계명 자체의 기원도 그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한참 지난 후에나 추측이 가능하다.
가나안에 도착한 헤브라이인
성서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성서는 유대인의 역사 대부분을 설명해주는 증거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성서에는 다른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거나 추측해 볼 수 있는 많은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서 이외에 역사가들이 얻을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는 헤브라이인이 가나안에 도착한 뒤에나 나타난다. 성서의 여호수아 서라는 부분에 나오는 가나안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1200년대에 가나안의 도시들이 파괴당한 증거와 일치한다. 헤브라이인이 지역의 숭배 관습이나 다신론과 싸워야 했다는 성서의 기록도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과 일치한다. 가나안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도 불렀는데, 이 지역에서는 당시 헤브라이인과 원래 이 지역에 살던 민족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는 물론 당시 이집트의 영향력이 쇠퇴해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집트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면, 팔레스타인처럼 중요한 지역이 소수의 셈족들의 전쟁터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헤브라이인은 야훼를 섬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다른 유목 민족들과 동맹을 맺는 기초를 마련한 것 같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이 지역의 여러 부족들과 계속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야훼를 숭배했고, 이러한 믿음이 그들을 하나로 만드는 유일한 힘이 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정치 구도는 이러한 부족 간의 분리와 단결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갔다. 헤브라이인은 파괴를 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 냈다. 그들은 분명 문화적으로 여러 면에서 가나안 사람들보다 뒤떨어져 있었다. 예를 들면, 헤브라이인은 가나안의 문자와 건축 기술 등을 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모든 면에서 가나안인에 버금가는 도시생활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 지역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불결하고 혼잡하며 비좁은 장소에 불과했다. 오래전 미노아 문명이 도달했던 도시생활 수준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는 미래에 꽃필 인류 역사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이번 글을 통해서 헤브라이인의 통치자와 모세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헤브라이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헤브라이인의 민족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아래 함께 보면 좋은 글에 내용을 좀 더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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