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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이스라엘의과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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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12지파

출생 순서 야곱의 아들들  이름의 뜻 
 1  르우벤  보라! 아들이라
 2  시므온  간구를 들으심
 3  레위  더불어 연합함
 4  유다  여호와를 찬양함
 5    여호와의 심판
 6  납달리  경쟁함, 씨름
 7    행운, 복됨
 8  아셀  기쁨
 9  잇사갈  보상() 받음
 10  스불론  함꼐 거처함
 11  요셉  수치를 제함, 더함
 12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기원전 928년경 솔로몬이 죽자, 헤브라이인 지파 가운데 가장 남쪽의 두 지파, 즉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이 그의 아들 르호보암을 왕으로 받아들였다. 헤브라이인의 국가는 두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남쪽의 유다. 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고,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처음에는 세겜을 수도로 삼았다.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경 아시리아에 의해 마지막 수도 사마리아가 점령당하면서 멸망한다.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7년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 해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되면서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그 뒤 이곳의 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왕을 호령한 선지자들

히브리이인들의 율법서
율법

헤브라이인이 정착한 가나안 땅에는 풍요를 비는 제사와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론이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헤브라이의 종교는 이런 농경민족의 종교적 전통을 헤칠 수 있는 위험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야훼와의 약속을 깨뜨릴 수 있는 위험은 언제나 있었다. 이스라엘 왕국이 번성하면서 그들에게는 또 다른 위험 요소가 생겼다. 왕국이라면 으레 궁전, 다른 나라와의 교류, 외국인 아내 등이 있어야 했다. 특히 솔로몬 시대에는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위해 외국인 아내를 맞는 일이 많았다. 그 외국인 아내들은 자신들 고유의 신을 믿었다. 따라서 선지자의 첫 번째 역할은 다른 신을 숭배해 헤브라이인의 법에 어긋나는 사람을 꾸짖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역할은 사람들이 사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신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들은 단순히 미래를 아는 예언자들이 아니었다. 물론 최초로 등장한 두 명의 위대한 선지자, 즉 사무엘과 엘리야에게는 이 말이 충분히 해당될 것이다. 그들은 설교자이자 시인, 정치적·도덕적 비평가였다. 이스라엘의 신이 그들에게 전해 주는 신념을 사람들에게 심어 줄 수 있어야 진정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결국 왕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선지자가 선포한 도덕적 기준에 의해 평가받았다. 그들은 종교와 도덕을 하나로 연관시켰는데, 이것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이후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선지자들은 야훼 숭배를 세상의 모든 신에 대한 숭배로 발전시켰다. 그들은 공정하고 자비로우며 죄를 처벌하는 데는 엄격하지만 죄를 지은 자가 그 죄를 뉘우치면 기꺼이 용서했다. 이 신은 서아시아의 종교 문화에서 최고조를 이루었고, 이후 종교는 지방과 민족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지자들은 또한 사회의 부정을 강하게 공격했다.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는 특권을 가진 성직자 계급의 신분을 뛰어넘어 대중들 앞에서 직접 종교 관리들을 비난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고, 왕은 단순히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도덕규범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이며 권위와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하느님이 내려 준 법, 즉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기존의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토대가 되었다. 율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권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선지자들은 언제나 이 법을 바탕으로 왕이나 성직자의 권위에 맞설 수 있었다.

자기 멋대로 살기 시작한 히브라이인들

사무엘 이후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상황을 걱정했다. 그들은 그것이 타락과 부패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주위의 강대국이 쇠퇴기를 겪는 동안, 이스라엘은 번영을 누렸다. 이때는 여러 왕국들이 금세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곤 했다. 솔로몬이 죽은 후, 헤브라이인의 역사는 번영과 쇠퇴를 거듭했지만, 크게 보면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미 반란이 일어났다. 왕국은 곧 둘로 갈라졌다. 북쪽에서는 열 개의 지파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왕국의 수도사 마리아를 중심으로 단결했다. 남쪽에서는 베냐민 파와 유다 파가 예루살렘을 수도로 유다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10개의 지파는 집단으로 추방당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유다 왕국은 좀 더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유다 왕국은 작고 튼튼했지만, 거대 국가가 되지는 못했다. 기원전 587년 드디어 예루살렘의 벽이 무너지고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바빌로니 아군에게 침략당했다. 유다 왕국의 주민들 역시 추방을 당했다. 그중 많은 수가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바빌론 유수를 경험했다. 바빌론 유수 기간은 매우 중요한 민족 형성기였다. 이제야 그들을 진정한 유대인'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또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그들만의 전통을 이어 갔다. 당시는 거대한 제국이 다시 한번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한 뒤 마지막 문명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던 때였다. 따라서 유대인이 다시 나라를 세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잃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민족적인 의식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