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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혼란의 메소포타미아와 새로운 아시리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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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속적으로 공격해 새로운 제국을 만들기 시작한 아시리아 제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블로그를 끝까지 읽어보시면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아시리아 제국에 기틀과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혼란

함무라비시대 이후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민족들에게 시달림을 많이 당했다. 한쪽에서는 히타이트와 미탄니가 오랫동안 적이 되었다. 게다가 또 다른 적들이 밀고 들어와 아수르와 바빌론을 점령하기도 했다. 이후 히타이트마저 점점 쇠퇴하자,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는 기원전 9세기까지 거대 국가의 군사력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간단하게만 보이는 이러한 역사 뒤에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었다. 기원전 11세기 초 아시리아 왕이 시리아와 바빌론을 짧게나마 정복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시리아 왕은 학자들이 아람인이라고 부르는 진취적인 셈족에게 곧 밀려나고 말았다. 아람인 역시 셈족의 전통을 따라 사막에서 비옥한 제대로 이동해 왔다. 그들은 바빌론 지역을 다스리던 카시트족처럼, 아시리아와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 있었다. 이는 무려 200여 년간 지속되었다. 당시 셈족 가운데는 칼데아인이라는 민족이 있었는데, 칼데아라는 이름은 바빌로니아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지명에 혼란이 있는 것은 그 지역을 지배한 민족이 바뀌면서 생긴 결과다.

아시리아 제국

아시리아의 왕 타글라트필레세르 3세가 왕좌에 앉아 있고 그 뒤에 고관과 하인들이 서 있는 벽화의 모습
타글라트필레 3세

원전 9세기, 혼란스러운 사건들 속에서도 메소포타미아는 나름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그 뒤 아시리아의 군대가 다시 한번 시리아와 유대인의 왕국으로 진격해 왔다. 몇 차례 거센 저항에 부딪혔지만, 아시리아군은 몇 번이고 다시 쳐들어가 그 지역을 정복했다. 이제 서아시아 역사에서 새롭고 중요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아시리아 제국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는 전성기로 향해 가고 있었다. 아수르를 대신하여 아시리아의 수도가 된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의 니네베는 이제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중심이 되었다. 아시리아 제국은 다른 거대 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합쳐 갔다. 아시리아는 다른 나라의 왕을 자신의 부하로 삼고 속국을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원래의 통치자를 내쫓고 그 자리에 아시리아의 총독을 파견했다. 때로는 국민들을 몰아내기까지 했다. 그중 한 가지 방법이 집단 유배였다. 아시리아가 멸망시킨 이스라엘의 열 개 지파는 잘 알려진 집단 유배의 희생자다. 아시리아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듭하며 영토를 넓혀 갔다. 가장 큰 승리는 기원전 729년에 일어났다. 이 해에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곧이어 아시리아군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침략했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영토는 상이집트가 있던 나일 강 상류 지역으로 한정되었고,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는아시리아에 병합되었다. 그 무렵 지중해 동부의 키프로스가 이미 굴복했고, 근처의 실리시아와 시리아도 정복당했다. 마침내 기원전 646년 아시리아는 마지막으로 티그리스 강 동쪽 엘람 땅의 일부를 정복했다. 엘람 왕은 아시리아의 전차를 끌고 니네베 거리를 통과하는 수모를 당했다. 아시리아의 이 같은 여러 차례의 정복은 서아시아 전역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표준화된 통치체제와 법률이 그 지역 전체로 확산된 것이다. 또한 병역 의무 때문에 군인이 된 징집병과 추방당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한 지역의 특수한 성격만을 강조하는 지역주의가 허물어졌다. 또한 아람어가 공용어로 널리 퍼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아시리아 이후 새로운 세계주의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아시리아 제국은 1,000년 이상 지속되었다. 연구자들은 아시리아의 발전 과정을 구제국, 중제국, 신제국의 세 단계로 구분한다. 구제국은 기원전 18세기부터 14세기까지 유지되었다. 중제 국은 아시리아의 영토 확장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흑해 남동부와 카스피 해 남서부의 산악지역에 있던 우라르투가 강성해지면서 기원전 9세기에 끝나고 만다. 아시리아 문명의 절정기는 아슈르 나시르 팔 1세(기원전 883~859)가 다스린 신제국시대에 찾아온다. 기원전 9세기부터 7세기까지 아시리아인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당시 아시리아의 군사 작전은 왕궁의 벽에 기록되었다.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 제국은 바빌로니아인과 메디아인의 연합군에게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