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의 연대
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대부분을 나름대로 논리 있게 꿰어 맞춰 놓았다. 하지만 상당 부분이 여전히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대 역시 대개는 어림잡은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첫 번째 시대가 어떻게 지속되고 어떻게 끝나는지, 또 이때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수메르의 역사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기원전 3360년부터 기원전 2400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때를 고대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는 도시국가들 간의 전쟁과 이들의 흥망성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증거로 요새처럼 만들어진 도시나, 바퀴를 군사 기술에 응용해서 만든 초기의 사륜 전차를 들 수 있다. 900년간 지속된 고대 시기의 중반에 이르면, 각 지역의 왕조들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수메르 사회는 정치도 꽤 발달하여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대의제라는 정치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사회의 규모가 커지자 성직자를 겸한 이전의 통치자들과는 다른 왕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원래 각 도시에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임명된 군 지휘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를 지휘할 긴급 상황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했다. 이들로부터 왕조가 시작되었고, 세력을 키운 왕조들은 서로 끝없이 싸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위대한 한 인물의 등장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사르곤 1세
사르곤 1세는 아카드라는 셈족 도시의 왕이었다. 그는 기원전 2400~2350년에 수메르의 도시들을 정복했고, 아카드의 패권을 확립했다. 사르곤 1세로 추정되는 얼굴 조각상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만약 이 조각상이 정말 그러면, 사르곤 1세는 우리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왕이 될 것이다. 그는 제국을 건설한 수많은 왕 가운데 최초의 왕이다. 그는 멀리 이집트와 에티오피아까지 군대를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통치하는 국가는 다른 도시국가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는 여러 도시국가를 하나로 묶는 통일된 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백성들은 수천 년에 걸쳐 외부에서 문명이 움트고 있던 지역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의 문화를 장악해 새로운 양식의 수메르 예술을 남겼다. 그 예술의 주요 주제는 전쟁에서 거둔 승리였다.
아키드 제국
아카드 제국은 수메르의 멸망이 아니라 수메르 역사의 두 번째 시기를 뜻한다. 그 기간은 마치 연극의 막간처럼 짧았지만 새로운 차원의 집단이 만들어진 점에서 매우 의미 깊었다.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 전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의 분리도 이때 자리를 잡았다. 신과 종교는 여전히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지만, 정치적 권위와의 분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었다. 수메르의 도시에는 신전 이외에도 왕궁이 건설되었다. 신의 권위 역시 왕의 권위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성직자 등 도시의 주요 인물들을 제치고 어떻게 왕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전문적인 군사기술의 발달이 이러한 결과를 낳는데 큰 영향을 끼쳤던 것만은 분명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우르에서 출토된 비석에는 훈련이 잘 된 보병 부대가 등장한다. 군사들은 밀집 대형으로 방패. 를 겹쳐 들고 창을 수평으로 겨누고 있는 모습이다. 아카드 제국에서는 전쟁과 군대가 사회의 중심인 군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다. 사르곤의 궁전에서는 왕이 보고 있는 앞에서 5,400명의 병사들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군대를 키우고 무장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히 힘을 기르기 위해서였고, 정복 활동은 이런 힘을 유지할 수 있는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군국주의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특수한 상황이나 어떤 다른 필요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물을 경작지에 공급하거나 홍수에 대비하는 일 같은 대규모 작업을 위해 노동력을 동원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통치자라면, 군대 역시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무기가 다양해지고 비용이 더 들어가면서 점점 더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아카드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신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용한 활은 기다란 나무 조각과 뿔로 만든 위력적인 것이었다. 아카드 제국의 통치 기간은 비교적 짧았다. 200년 뒤 사르곤의 증손자가 다스리고 있던 아카드는 구티족이라는 산악 민족에 의해 멸망했다. 이어 학자들이 '신수 메르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 뒤 기원전 2000년까지 약 200년 동안 권력은 다시 원래 수메르인들의 차지였다. 이 시기의 중심지는 우르였다. 실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르 제3왕조를 일으킨 초대 왕은 자신을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라고 불렀다. 수메르뿐만 아니라 아카드까지 왕의 칭호에 넣은 것은 강대했던 두 제국의 이름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시기 수메르의 예술 역시 왕을 찬양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였다. 고대 시기에 인기 있었던 인물상은 자취를 감추었다. 신전은 더욱 웅장한 형태로 다시 세워졌고, 왕은 지구라트를 지어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려고 했다. 행정 문서에는 셈족이었던 아카드 제국의 영향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으며, 문화에도 셈족의 색깔이 두드러졌다. 아마도 왕권을 확대하려는 야심이 이러한 유물에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신수 메르 시대 마지막 전성기의 우르의 왕은 티그리스 강 남부 엘람과의 경계 지역인 수사에서부터 레바논 연안의 비블로스까지 공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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