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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쿠바를 발견한 인물과 쿠바를 바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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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발견한 콜럼버스와 해적과 노예의 땅에서 혁명의 땅으로 탈바꿈한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서양에 발견되기 전의 쿠바의 모습과 쿠바를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와 그리고 바티스타를 통해 변화된 쿠바의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아래 내용을 통해서 자세히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콜럼버스

푸른 하늘 아래 콜럼버스가 한 곳을 지칭하고 바라보는 동상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

콜럼버스 (1451~1506) |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 14세부터 배를 타기 시작, 고향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일찍이 포르투갈에 건너가 결혼을 하고 선원생활을 하던 중 1484년 서쪽 항로를 통해 인도에 갈 수 있다는 계획을 포르투갈 왕에게 건의하였으나 거절당합니다. 이에 에스파냐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을 얻어 1492~150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서양을 왕래하였습니다.

해적과 노예의 땅에서 혁명의 땅으로 탈바꿈하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와 88명의 선원들은 세 척의 배에 나눠 타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인도로 가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10월 28일 이들은 드디어 어느 육지에 상륙했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쿠바랍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쿠바를 인도의 서쪽 어디쯤으로 생각했답니다. 오늘날 이 일대의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콜럼버스는 쿠바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지상 최대의 아름다운 섬'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쿠바의 원주민들은 스페인에 대항해 몇 차례 폭동을 일으켰지만 스페인은 잔인하게 이들을 살육했습니다. 1500년대 초, 폭동에서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인정하고 그들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편 정복자들은 스페인 국왕의 허락 아래 광산 개발 등에 인디언들의 노동력을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상으로 이용했습니다. 이때 수많은 인디언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인디언들도 천연두처럼 새로 들어온 질병에 하나 둘 쓰러져갔습니다.

 원주민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난 후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이 대신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데, 1840년대에는 거의 50만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쿠바에 살게 됩니다. 식민지 시대 초기 쿠바는 해적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아바나와 다른 섬들에서 볼 수 있는 돌로 만들어진 요새는 주로 해적들의 공격을 퇴치하고자 건립한 것들입니다.

 식민지 쿠바 사회는 주로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들이 지배했습니다. 이들 크리 올료 (서인도 제도를 비롯한 남북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백인들을 지칭하는 말) 밑에는 자유가 보장된 흑인이 있었으며, 최하층에 흑인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개혁가들이 1800년대 초부터 쿠바의 독립과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했지만, 미국이 스페인의 지배를 인정했기 때문에 노예제도 폐지가 늦어지다가 결국 1880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폐지됩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긴 했지만 백인인 크리올료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정부 관련 일을 했고, 아프리카 쿠바인들은 농경 및 광산 노동에 종사하는 등 차별은 여전했습니다. 설탕, 광산, 목축, 담배 산업이 발달하면서 쿠바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간섭도 늘어나게 됩니다.

 1898년 쿠바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하게 되는데 미국이 쿠바에 간섭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일으킨 이 전쟁에서 스페인은 패하게 됩니다. 1902년,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 반군 지도자인 가르시아와 그의 군대가 대부분 흑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스페인 정부로 하여금 계속 쿠바를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은 실질적인 쿠바의 독립을 지연시켰고, 반인종주의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부패한 통치자들을 지원했습니다. 미국에 종속돼 있던 1930년대의 쿠바는 주정뱅이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도박의 천국으로 변해갔습니다.

1933년 정부 지도자였던 마차도가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미국은 재빠르게 반란군 소속 하사관인 바티스타에게 권력을 넘기고 그를 인정합니다. 이후, 미국을 등에 업고 쿠바를 통치했던 바티스타는 선거에서 이길 가망성이 없자 대통령 선거가 있기 3개월 전인 1952년 3월, 무혈 쿠데타로 다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바티스타의 통치 기간 동안 농민과 노동자들은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졌고, 무차별적인 억압과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쿠바를 지배한 바티스타

바티스타 (1901~1973) | 20살의 나이에 군에 입대한 바티스타는 1933년 부사관들의 반란'을 이끌며 정계의 유력 인물로 떠오릅니다. 미국은 곧바로 바티스타에게 특사를 보내 '당신이 쿠바에서 권위를 가진 유일한 인물'이라고 힘을 실어 줍니다. 반미정권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바티스타는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꼭두각시 대통령들을 조종했고 실질적으로 쿠바를 통치했습니다. 그 자신도 1940년 대통령을 지냅니다. 바티스타와 미국의 관계는 바티스타가 1952년 3월 10일 쿠데타로 재집권하면서 더욱 깊어집니다. 바티스타 재집 권기의 쿠바는 극단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었는데 쿠바 전체 공공사업의 80퍼센트, 철도의 50퍼센트와 모든 석유사업을 미국이 운영했습니다. 미국 자본가와 마피아는 바티스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수억 달러를 벌어갔습니다.